일상과 생각

이성과 감성 그리고 공감

Realtor81 2025. 5. 4. 11:22

 

이성으로는 다가 가지 못 하는 감성?

감성으로는 이해 하지 못하는 이성?

 

사람 관계에 있어서 이성과 감성의 차이로 인해 다툼이 자주 일어납니다. 남녀 사이에서 주로 일어 나지만 일반적인 대인 관계에 있어서도 자주 포착 됩니다.

 

이 둘의 적대적 관계는 많은 곳에서 다루고 있지만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어느 것 하나 배제 될 순 없지만 중요한건 서로를 이해 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다툼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불의를 보면 잘 참지 못하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를 생각 하는 것과 다르게도 저는 매우 이성적인 사람입니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 줄은 알지만 내 가족을 해한 사람을 용서해 줘야 하나? 라는 질문에 있어서는 한 없이 감정적이게 됩니다. 하지만 타인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죄인에게 기회를 주고 회개 하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말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디서 어디까지를 이성적이고 감성적인 것인지 말 할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위의 상황에서는 둘다 감정적 (감성적) 인 것 같습니다. 이성적이라고 한다면 한 쪽을 욕하기 전에 그 무게를 한번 따져 보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여 합의를 이끌어 보자!! 라는 단계를 거쳤을 때 이성적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전에 다리 수술을 하고 정기 검진을 위해 분당 서울대 병원에 갔습니다.

유명한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정기 검진을 하는 것도 6개월 전에 예약을 하고 당일 날에도 대기를 오래 한 후에야 진료가 가능합니다. 그렇게 저의 차례를 기다리다가 옆 진료실에서 들리는 불협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주요 요지는 살이 찐 환자가 어떤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그리 성공할 가능성이 없어서 의사 선생님은 냉정하게 현재의 상황을 말하고 본인이 선택 하는 것임을 말 했습니다. 환자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 하였고 끝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왜 우시냐면서 그렇게 자신의 의견을 못 받아 드리면서 우는 것은 자기를 모독하는 것이라며 화를 내셨습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소비 하면서 다른 진료실로 발길을 옮기시려다가도 다시 들어가서 말씀을 이으시고 화를 내셨습니다. 환자는 억울함과 절망감과 답답함에 말을 이어 갔고 자신은 누구를 탓하려는 것도 아니고 의사 선생님을 모독할 의사도 없지만, 다른 병원에서는 방도가 없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냉정하게 살을 빼야만 수술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도 그렇고, 그것이 가능 했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듣고 있으니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의사 선생님의 표정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표정은 '저런 환자가 한 둘은 아니지... 저런 환자 때문에 우리가 죽겠다....'  라는 표정이었습니다.

 

그 상황에 있거나 저의 글을 보게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환자는 불쌍해 보이고 일방적으로 몰아치는 의사는 아주 나쁜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심지어 그 옆에서 이상한? 표정을 한 의사 마저도 묶어서 혼을 내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의사라는 직업이 힘든건 알겠지만 희망? 을 찾고자 하는 환자에게 저렇게 말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환자를 공감 하지 못 한다면 누군가는 꼭 그 말을 할 것입니다. 로보트냐? 너 T 냐? 

 

마치 욕을 하고 싶은데 차마 하지 못 하니 감정이 없는 사람으로 몰아가고 싶은 것이며 그렇게 해야 자신의 복받치는 감정을 인정 받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과연,

정말,

이 환자를 공감해야만 감성이 풍부하고 이해의 폭이 넒은 것일까요?

 

저는 다른 생각 입니다.

위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은 지극히

편파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며,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상대를 모독 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추었다

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의사라는 직종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돈도 많이 벌고 바쁜만큼 대접 받는다. 정도만 알지 그 과정의 힘듦을 절대 알수 없습니다.

왜냐고요?

힘들다는 기준은 매우 상대적이고 작은 것에도 매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의사라는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상상도 못할 만큼 절대적, 상대적 어려움이 있고 의사직을 수행 하는데 있어서도 많이 어려움이 있는데 이것을 겪어보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14시간 이상 공부를 6년도 아니고 1년이라도 한 적이 있나요?

선배의 불합리한 대우와 그들의 군대 문화를 겪어 본 적이 있나요?

똑똑한 무리속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친구이자 경쟁자인 사람들 속에서 외로움을 느껴본적이 있나요?

환자를 진료 하기위해 나의 개인적인 시간을 희생하는 정도의 직업의식을 가져본 적은 있나요?

개인의 이익도 있겠지만 병원의 이익을 같이 생각해야 생존 하는 곳에서 환자를 2~5분 마다 빠르게 회전시켜 하루에 수백명을 봐야 하는 사람의 정신을 생각해 본 적은 있나요?

오는 환자마다 힘들고 아픔을 토로하며 끝없이 의사인 자신의 능력을 검증 하려는 태도를 받아 보았나요?

감정에 호소하면 능력을 의심하고 사실을 말하면 떼를 쓰는 것을 매일마다 다른 사람이 한다면요?

그 외에 너무나도 많은 챌린지들이 있을 것이라고 감히 확신 할 수 있습니다. 

 

한 번이라도 나는 저런 상황에서 어땠을까? 

과연 나는 할 수 있을까?

만약 한다면 어떤 인내와 자신에 대한 불신과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한번이라도 해봤나요?

 

이런 것을 고려 한다면 사실 피해자는 환자가 아니라 의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공감이라는 것은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가식을 말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당장 앞에 있는 사람이 힘들어 하니까 달래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요?

 

아니....  이런 꼬리에 무는 생각을 한번이라도 해본적이라도 있나요?

단순히 나의 치기어린 감정을 동의해 주지 않는 상대에게 그냥 막말을 쏴지르지는 않았나요?

 

혹시 그런데도 나는 중립이었지만 나의 감정을 인정받지 못해 화가 나는 것이라면 그 감정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감정과 상황은 중요하지만 타인의 감정과 상황은 고려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고 본능이기 때문에 그 감정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철저히 생각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공감을 하고 말고에 대한 것은 감정적인 동의를 표현하는 것일뿐이지 그것이 진짜 공감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감은 중립으로 존재 하기 어렵고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감 능력은 그 부분을 이해는 하지만 표현까지 한 것은 아니고 반대 입장을 생각하면 공감을 한쪽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무조건적인 공감을 해주지 않는다고 사회적 언어를 인지 하지 못 하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언어 폭력과도 같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입니다.

 

 

역지사지 (易地思之)
한자 그대로의 뜻은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라', 즉 상대편의 처지나 형편에서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의미의 사자성어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입장바꿔 생각해보라는 뜻.

 

 

 

이 말을 잘 이해 하면 갈등이 생겼을 때 공감이라는 것은 얼마나 편파적인 감정일 수도 있는지를 생각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성적인 대화와 판단이 중요한 것이며, 내가 환자가 되었을 때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어렵겠지만 함부로 의사를 욕할 수 없고, 내가 의사라고 해도 환자의 그런 감정적 표현을 이해 못 해서는 곤란 하다는 것입니다.

 

부디,

공감이란 말을 시의적절하게 잘 사용하고,

사실의 이해와 감정적 위로를 통해 

이해와 소통을 해 나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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